“자~아~! (움직임을)장단에 맞추지 말고, (움직임이)장단을 끌고 가야합니다. 내가 한번 추어 볼게요!”
2012년4월10일 비오던 날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지하연습실 <일취월장>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엄중하다. 5월25~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국립무용단 창단 50년 기념 공연 ‘우수 레퍼토리 시리즈’를 위한 연습현장은 ‘전설의 춤’을 배우려는 남성단원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한쪽 벽이 거울로 장식된 연습실에서 전 국립무용단장인 조흥동(72)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단원들에게 진쇠춤을 가르치고 있다. 연습 두번째 날인데 춤순서 진도가 절반이상 나갔다. 1994년 국립무용단장직을 그만둔 후 18년만에 국립무용단 연습실을 찾은 조흥동 전 국립무용단장의 가슴속 추억더미에는 어떤 풍경의 국립무용단이 담겨있을까. 연습중인 11명의 남성무용수가운데 단장직무를 대행중인 백형민단원을 제외하곤 그와 함께 국립극장에서 근무했던 단원이 한 명도 없으니 세월의 무심함을 느꼈을 터이다.
기념공연을 앞두고 여성단원들의 춤연습이 한창인 4층 국립무용단 연습실의 열기도 만만치 않다. 1995년 국립무용단을 그만둔 양성옥(58)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 교수가 17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땀이 배인 국립극장 무용단 연습실을 찾아 쉴 틈을 주지 않고 혹독하게 ‘태평무’를 지도하고 있다. 연습종료시간은 애초 오후 4시지만 예정시간을 2시간 넘길 만큼 연습 밀도가 진하다. 양성옥 교수는 연습 첫날인 이날 20여명의 여성무용단원들에게 강선영류 ‘태평무’ 동작 순서를 모두 지도했다. 혹독한 연습강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단원들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배움’의 기회임을 알기에 양성옥 교수의 동작 하나, 말 한 마디라도 놓칠까싶어 ‘눈은 번쩍! 귀는 쫑긋!’이다. 시간의 공백을 넘어 약 20년만에 자신의 춤고향을 찾아온 국립무용단 OB들의 마음이 아름답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관객보다 단원을 위한 공연이라는 게 옳을 지도 모르겠다.
국립무용단 창단 50년 기념 ‘우수레퍼토리 시리즈’는 5월25일 오후 8시, 26일 오후 4시에 각각 마련된다. 국립무용단 50주년 공식행사로는 처음 열리는 춤공연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신임 국립무용단장이 선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용단 자체적으로 프로로그램을 결정했기 때문인지, 단장들의 대표작을 ‘50년’에 맞춰 재음미하는 스펙터클 무대를 미루고, 역대무용단장과 초대 국립무용단 멤버 등 무용가 8명의 소품이 주를 이룬다. 그렇지만 <우수레퍼토리 시리즈 시즌 1>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자체가 아쉽다. 50주년을 맞아 대중과 만나는 첫 공식무대인데, 제목이 너무 겸손하다.
한국창작춤의 보고인 국립무용단이 50주년을 맞은 만큼 송범의 ‘도미부인’을 비롯 역대 단장들의 작품 하이라이트를 모아 재연한다든가, 각 단장들의 대표작을 모둠으로 기획했다면 창단 50년의 의미가 한층 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만간 부임할 신임단장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멋지고 귀한 무대는 삼간 셈이다.
레퍼토리는 고 송범의 ‘강강술래’ ‘부채춤‘ ’고풀이‘ ’농악‘, 최현의 ’비상’, 강선영류 ‘태평무’,김백봉의 ‘장고춤’, 배정혜의 ‘선무도’, 김현자의 ‘사랑가’ 등 총 12개의 남무와 여무로 구성됐다. 국립무용단 공연의 단골연주자였던 박병천의 ‘진도북춤’도 있다.
국립무용단은 1962년2월6일 8명의 단원으로 출범했다. 한국무용가로는 김백봉 김문숙 권려성 조용자 정인방 강선영 김진걸 이월영 등 8명이 창단멤버였다. 발레계의 임성남 송범 진수방 주리 이인범 등 5명까지 합쳐 모두 13명의 무용가가 국립무용단 창단사의 주역이 됐다. 초대단장은 임성남, 부단장은 송범(발레) 김백봉(한국무용)이 각각 임명됐다. 1962년3월 창단기념공연은 임성남 안무의 발레 ‘백(白)의 환상’과 ‘쌍곡선’, 송범 안무의 민속발레 ‘영(靈)은 살아있다’
그리고 50년이 지났다. 6명의 국립무용단장은 100여편(###이 부분 확인필요합니다!!)의 정기공연 작품을 안무하고 지역공연과 세계 (몇 ##이부분도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개국에서 (몇 ### 이 부분도 부탁합니다 ) 회의 해외공연을 펼쳤다. 국립무용단 100년을 이끄는 국가대표선수들을 위하여! 브라보!
유인화(경향신문 논설위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 성신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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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용에서 비롯된 국립무용단 50년-대중화와 세계화>
지난 50년동안 국립무용단의 가장 큰 자산은 무용수들이었고 단장은 무용수들과의 작업을 통해 한국전통춤을 현대적으로 수용해 재창조해왔다. 1926년3월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일본 이시이바쿠의 내한공연후 그의 문하에서 춤을 배운 최승희와 정구선수 출신의 조택원은 서구의 춤에 한국의 전통춤을 접목해 ‘신무용’이라는 영역을 발전시켜왔다. 일본에서 비롯된 용어인 ‘신무용’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거치면서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며 한국창작춤의 산맥을 이뤄왔다. 최승희 조택원이후 진수방 장추화 송범 임성남 김백봉 등 많은 무용인들이 명맥을 이어왔다. 특히 국립무용단이 창단되면서 한국의 전통춤을 바탕으로 한 신무용계열의 한국창작춤은 시대의 정서에 맞게 꾸준히 진화해왔다. 국립무용단이 추구해 온 한국창작춤의 주소는 춤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국립무용단은 ‘국가간의 춤교류를 통한 세계춤문화의 동질성 추구’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한국춤의 원형질을 바탕으로 우리 몸짓을 재해석하고 세계인의 정서에 접근하는 보편성과 대중성, 독창적인 고유성과 동양적 신비성을 확보하면서 해외무용시장을 겨냥한 경쟁력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송범단장의 경우 발레를 전공한 경력을 바탕으로 전통무용, 전통무용을 바탕으로 한 신무용, 발레, 현대무용, 무예까지 겸한 다양한 동작을 움직임의 시스템으로 구체화시켜 춤작품을 창작했다. 또한 스토리가 있는 무용극 등 대작들은 해오름극장의 스펙터클한 느낌을 살려 입체적고도 세계무대에 내놓을만한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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